

신라대학교 역사관
여성교육을 위한 고등교육기관 설립의 기틀을 마련하다.
1950년대를 시작으로 부산지역에 교육받으려는 여학생의 수는 매년 급격하게 증가하였으며, 여성만을 위한 대학설립이 하나의 시대적인 과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박영택 선생은 일본인 상권 속에서 근검절약과 성실함으로 상업적 성공을 이뤄 부를 축적하는 한편, 주민들을 대상으로 교화사업과 문명퇴치사업 등 교육 사업을 통해 교육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특히 육아와 함께 가정교육을 맡은 여성들이 먼저 깨어있어야 한국 사회의 발전과 나라의 미래가 보장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여성교육을 위한 고등교육기관 설립의 기틀을 세웠다.
박영택 선생은 평생 동안 근검절약으로 모은 청재(淸財)를 희사하여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부산지역에 1954년 박영학원을 창설하고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1955년 필생의 꿈이였던 부산여자숙 설립 인가를 받고(문고대 제393호), 다음해 3월 제1회 119명의 신입생을 모집하였다. 설립 당시에 연산동 캠퍼스는 전쟁 시설을 위해 징발된 상태였기 때문에 신창동에 있는 대각사 내에 강의실을 마련하고 수업을 진행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1956년에 건물을 돌려받아 부산여자대숙을 연산동 대학부지로 이전하였다.
1960년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성공적으로 추진됨에 따라 다양한 여성인력 수요가 급증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격변에 따라 이 시대에 필요한 여성지도자 양성을 위해 1964년에 부산여자숙을 폐교하고, 부산여자초급대학 설립을 인가받았다. 대학의 상징인 교훈, 교가, 교기, 교표 등을 제작하였으며, 초급대학에 부합한 시설과 교수 학충, 부속 유치원 설립 및 ‘수련지’라는 문예지와 ‘부여대학보’를 창간하여 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